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차 직봉전쟁 (문단 편집) === 직봉동맹의 균열 === 1920년 [[안직전쟁]] 때 [[차오쿤]], [[우페이푸]]가 이끄는 직계군벌은 [[장쭤린]]의 봉천군벌과 연합하여 [[돤치루이]]의 [[안휘군벌]]을 격파하고 천하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하지만 봉천, 직계 양 파벌이 각각 자파의 세력확장에 골몰하면서 환계에 대한 저항을 매개로 맺어진 직봉동맹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정식으로 군사교육을 받은 청조의 고급 장교 출신인 차오쿤과 우페이푸 눈에 마적단 출신에 재물욕이 많은 장쭤린은 상종하기 어려운 천박한 인간으로 보였고 장쭤린은 장쭤린 나름대로 직계의 실세인 우페이푸를 일개 사단장으로 여겨 푸대접하는 등 개인적인 관계부터가 별로였던 것도 있지만 군비의 배분과 지방관 자리를 놓고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었다. 안직전쟁 직후인 1920년 8월 11일, 차오쿤과 장쭤린은 베이징에서 [[진윈펑]]을 국무총리 겸 육군총장으로 복직시키고 외교총장에 [[옌후이칭]], 내무총장에 장지담, 재무총장에 주자제, 해군총장에 [[싸전빙]], 사법총장에 동강, 교육총장에 범원렴, 농상총장에 왕내빈, 교통총장에 엽공작을 임명하였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우페이푸는 재물욕이 많고 기자들 앞에서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는 장쭤린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아 8월 16일 베이징에 온 이후 바로 다음날인 8월 17일 정저우로 이동, 직계장령회의를 소집하고 낙양에 연병기지를 설치하여 봉군을 상대하기 위한 군사훈련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9월 4일, 차오쿤과 장쭤린은 직봉 동맹을 위해서 장쭤린의 넷째 아들 [[장쉐쓰]]와 차오쿤의 여섯째 딸 조사영의 혼인을 결정, 톈진에서 사돈관계를 맺는 한편 4가지에 대한 합의사항을 도출했다. * 1. [[차오쿤|직노예 순열사]]와 [[장쭤린|동삼성 순열사]]는 관할하는 성에서의 인사와 행정권을 편의에 따라 행동한다. 즉 자유행동의 권리를 갖는다. * 2. 독군을 교체할 때에는 반드시 같이 협의하여 중앙과 지방이 일치를 기한다. 즉, 관내, 관외가 서로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한다. * 3. 내각을 확고히 하기 위해 부득이 교체할 때에는 서로 알 수 있도록 한다. 즉, 내각의 인선은 차오쿤과 장쭤린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 4. 중앙에 중대 사건이 있으면 같이 협조하여 처리한다. 이렇게 봉천과 직계는 한동안 동맹을 유지하려고 했으나 지방관 임명 문제에 있어서 각 파벌의 이해관계가 충돌, 갈등이 빚어지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